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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활동 이모저모

착하다 = (매력 없음, 무능력) or (위선)

by 한가희김 2021.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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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 = (매력 없음, 무능력) or (위선) 

 

요즘 참 '착하게, 차카게 살자'라는 문구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참 좋아보인다. 착하다는 말. 그런데 그거 아나.

이미 연애 시장에서도 '착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걔 어떤 점이 좋아?"

"응. 애가 착해."

 

이 말은 즉 '매력없다'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외모가 좋지는 않더라도 사람이 매력이 있어야 한다. 독특한 매력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연애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 요즘 젊은이들도 '착하다'는 평은 욕과 비슷하다는 점을 안다.

이 '착하다'는 말은 그 말 뜻에 많은 트릭(속임수)를 숨기고 있다. 일단 몇 가지만 예를 들겠다.

우선, 그 '착하다'는 평은 누구의 기준에서 착하다는 것인가? 기준이 불분명하다. 내 기준에서? 너 기준에서? 아니면 쟤 기준에서? 우리의 3/5 정도가 널 착하다고 평가해주면 착한 것인가? 그러면 우리의 3/5는 널 착하다고 평가해주는데 다른 집단의 3/5이 넌 악하다고 평가해주면 너는 악한 것인가, 착한 것인가?

 

둘째, '착하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서와 행동을 평가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이 때의 대다수의 평이 '착하다'는 좋은 평이었을지 몰라도 한 5년 쯤 지나서 같은 행동을 다시 평가해보면 '바보같은, 무기력한, 악한 정서와 행동'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평은 결코 항상성을 지니지 않는다. E.H.카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구에서도 '착하다'는 평은 결코 백만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셋째. 과연 오로지 '착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변호사로서 많은 소송 담당하면서 느낀 것은 범죄자도 100% 악한 인간은 아직까지 못봤다. 심지어 중범죄자도 착한 구석이 있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범죄자도 상황에 따라서는 한 45%의 선을 가지고 55%만 악한 경우도 있다. 즉, 상황에 따라 인간의 '착함'은 얼마든지 변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평소 그렇게 '착함'을 강조하는 이들 중에 착한 이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다 자기 상황에 맞춰서 착한 것이다. 사실은 굉장히 이기적인데 고급진 언어 등을 사용해서 착함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가려 보아야 한다. 이들은 결코 착하지 않다.

그래서 섯불리 어떤 상황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거나, 누군가를 단정적으로 규정짓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적이라도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신념에 매몰되어 융통성 없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느끼곤 한다.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분이 한국경제신문 칼럼에 '차카게 살자'라는 칼럼을 실으셨던데 많은 공감이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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