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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전략

절대 그럴리 없다

by 한가희김 202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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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럴리 없다

의뢰인이 상담을 할 때 이런 저런 상황을 가정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의뢰인뿐만이 아니다. 어쏘 변호사들도 이런 경우 많다. 내가 어쏘일 때 그랬다. 판사님이 이런 거 물어볼 것 같은데요? 저런 거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등등

그런데 그 때 참... 돌아오는 피드백이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절대 그런 거 물어볼 리 없다'는 것이 피드백이었으니. 그런데 막상 법원 나가보면 불행하게도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었고, 내가 궁금했던 것을 판사님들은 꼭 물어보셨다. 그런 사건들의 결말은 좋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변호사들이 조언해주는대로 '제가 아직 사건 검토가 안되어서...', '의뢰인에게 물어보고 서면으로 답을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결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나름대로의 방책을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부터는 이런 일이 거의 사라졌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절대 그럴리 없다'고 단정짓지 말고, 내가 불안해 하는 일은 '머피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일어난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대비를 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 일은 일어나니 방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상사가 답을 안 준다 싶으면 일단 의뢰인에게 직접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본 다음에 내 나름대로의 소송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의 대답할 내용 등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많이 성장을 하게 된 뒤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절대 그럴리 없다'는 말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라는 답과 동치어였다. 그러니까 답은 변론기일에 나가는 내가 찾았어야 했던 것이다. 약간은 원망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사실 나도 잘 모른다'라고 했으면 이전 사건들도 미리 대비를 했었을텐데... 아무튼 이제서라도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연승하고 있는 이유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잘 짜놓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 가정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물론 그렇게 가정해도 계속 예측불허의 상황이 생긴다. 정말 싫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미리 생각해두고 있으면 그 경우의 수가 몸에 체화된 까닭인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적응이 된다. 바로 치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혹시 초년차 변호사 중 상사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는데, '절대 그럴리 없다', '그런 거 왜 신경 쓰냐'라는 대답을 들어 불안에 떠는 분이 있으면, 답은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드리려는 것이다. 상사의 그러한 대답은 상사도 '그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싫다' 내지 '나도 잘 모른다'라는 말과 같으니, 그 경우는 사건들을 다시 꼼꼼히 보거나, 의뢰인과의 전화연락 등을 통해 알아서 대응방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그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싫다고 해서 그런 경우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 없지 않은가? 결국 대비의 문제라는 것이다. '절대 그럴리 없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정말 상사님께는 죄송하지만...

물론 절차적인 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통상 그렇게 진행 안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만, 실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판사들이 꼭 불안해 하는 요소들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으므로 상사들의 '절대 그럴리 없다'는 말은 이 경우에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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