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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활동 이모저모

양형에 있어서의 재량

by 한가희김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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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형사재판에서의 양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들어 글을 남긴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면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변호사를 만나면 그렇지 않으니 공정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양형기준을 세밀하게 하고 해당 양형에 따른 사유가 즉각 발견되면 일률적으로 양형기준 사유를 적용시키는 것이 형사사법의 공정을 위해 필요하지 않냐가 지인의 입장이었다.

난 물론 반대했다. 오히려 판사들의 재량을 강화해야 한다.

왜냐. 듣기에는 위의 논리가 매우 좋아보인다. 고무줄 잣대 같은 법관들의 양형을 방지하고 형사사법 판단에서의 공정성을 기하는데 세부적인 양형기준과 해당 양형기준의 일률적인 적용, 마치 AI 같은 일률적인 적용이 공평과 평등이라는 가치에 부합해 보이는 '듯' 하다.

내 생각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피고인 및 피고인의 가족들의 '불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는 성화가 빗발칠 것이고, 실제로 '불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본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AI와 글로 적혀 있는 '양형기준'과 달리 인간사회는 온갖 셀 수없이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간군상 그리고 이들이 펼치는 활동에 의해 굴러간다. 한 마디로 복잡계라는 것이다.

사건은 다르지만 죄명은 'A'라는 죄로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동일 죄명을 저지른 피고인 B와 피고인 C는 다른 사람이다. 다른 환경에서 컸고, 해당 범죄를 저지른 상황도 같지 않다. 당연히 피해자도 같지 않고,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적 유대관계도 같지 않다. 형사처벌이 피고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완전히 다르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이들과 가족관계를 구성하거나 기타 인간관계에 있어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심지어 구속된 이후 이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나 반성의 정도도 다른다. 개전의 정황도 다르다.

그런데 죄명이 같다고 반드시 같은 형을 내린다(?). 죄를 범하게 된 상황적 정황은 다르지만 죄를 범하였으니 일률적으로 형을 같게 한다(?). 아무리 기타 상황이나 환경을 고려하여 선처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양형기준에 비추어 볼 때 타 사건과 달리 볼 만한 양형기준 사유가 없으니 일률적으로 형을 고정한다(?)

이 무슨 해괴한 상황인가.

 

외부에서는 마치 그것이 공정한 사법정의인마냥 보일 수 있는데, 막상 피고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끔찍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공정한 재판 시스템이라니! 내가 무슨 주장을 해도 형은 일률적으로 나온다니!!

AI식 판결이나 너무나 세부적인 양형기준에 따른 일률적 판단은 인간사회를 이해하지 않는 그야말로 0과 1의 디지털식의 판단을 야기하고, 불공정함을 야기한다. 물론 판사님들은 편할 수 있다. 그냥 양형기준에 따라 기계적 적용만 하면 되니까. 그렇다면 판사가 왜 필요한가. 어차피 같은 판결 내릴꺼.

그리고 아무리 죄를 지은 범죄인이라고 한들 그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그에게 내려지는 일률적인 판단에 의해 과연 그러한 판단이 공정하다고 여길까. '나는 분명 A라는 죄를 범했지만 동일한 죄를 범한 C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고 C와도 전혀 다른데 같은 죄여서 똑같이 형을 받아야 하나. 왜 나의 사정, 범죄를 저지르기 전과 후의 현저히 C와 다른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것인가'등등의 생각을 하지 않겠냐는 거다. 피고인도 마찬가지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은 사정을 양형기준으로 세분화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 시간에 법관들의 재량권을 강화하고 그들의 지혜력 향상, 상황판단 능력 향상에 공을 기울이는 것이 낫다.

왜냐. 인간사회는 계속 변화한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범죄 양상도 세상이 변화하면서 계속 변화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한 2000년대만 하더라도 비트코인 범죄가 거의 없었는데, 2010년 들어서 비트코인 범죄가 증가하더니 요즘에는 정말 많아지고 있다. 이런식으로 범죄의 양상은 계속 변화한다. 이를 모두 개개의 사정을 만들어서 기준을 만드는 것이 훨씬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공정성만 야기한다. 왜냐. 기준을 만드는 이들이 해당 범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기에 그 기준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되는 이유는 자꾸 복잡계를 비복잡계 방식으로 규율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은 복잡계다. 범죄도 복잡계 현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런데 획일적인 양형기준은 비복잡계적인 방식으로 복잡계 현상을 규제하려고 한다. 고무줄 같은 형량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재량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방식의 기준은 결과적으로 실패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형사사법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서도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은 이 부분은 변호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본다. 능력있는 변호사들에게 국선비용을 더 주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능력있는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게 해서 자신의 사정을 최대한 어필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에 따르더라도 최대한의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대 변화를 쫓아갈 수 있고, 피고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길이라 생각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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